기존의 경력보유여성 관련 연구나 정책들은 그들을 배려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경력단절여성의 재취업을 가로막는 요인, 그들이 경제 활동을 재시작 할 때 사회에 주는 경제적 효과 등을 논하면서 그들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많이 논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배려의 대상이란 인식은 차별을 만들기도 하고, 실제로 그들의 자존감이나 효능감을 많이 낮추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각을 달리해보면 그들은 다수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경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 경력을 더 면밀히 분석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024년 4월에서 5월 사이, 10명의 재취업한 경력보유 여성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재취업한 경력보유여성의 강점
유급노동 시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경력보유여성들은 다양한 상황과 의견들에 상당히 열린 자세를 보입니다. 다른 문화권에서의 생활, 여러가지 역할 수행, 이직이나 업무 변경 등 다양한 삶의 경험을 보유한 덕에 유연성이 확보된 것으로 보입니다. 또, 일과 삶 사이에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잠시 유급노동시장에서 떠나있었던 경험 덕분에 직장 생활에 과하게 매몰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쉬이 여기지도 않게 되었다고 해석이 됩니다.
“경력 단절 때문에 일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그게 업무나 사회적으로도 강한 책임감으로 비춰지는 것 같아요" -수지님(가명), 비서업무, 30대 후반
육아와 가사노동 경력으로 개발한 역량
먼저, 사람을 이해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능력이 개발됩니다. 아이를 돌보거나 다른 가족 구성원들을 돌보는 과정은 끝없는 조율과 타협을 요구합니다. ‘이 사람이 지금 원하는 게 뭐지?’ ‘이건 안 되는데 떼를 쓰네. 어디까지 되고 안 된다고 하지?’ 등을 지난하게 소통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그 과정에서 ‘나는 뭘 원하고 있지?’ ‘나는 왜 이런 방식으로 이 아이와 소통하고 있지?’ 와 같은 성찰을 하게 됩니다.
“사람을 키워야 되니까 사람 심리를 분석하게 되고 왜 이런 행동들을 하게 되는지 분석하게 되잖아요. 그러다 보면은 내 주변 사람을 다 분석하게 되요”- 혜수님(가명), 교육관련업무, 41세
프로젝트 관리(Project Management) 능력도 개발 됩니다. 돌봄이나 가사노동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해야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장 해야되는 일과 조금 포기해도 되는 일을 구분하여 빠른 의사결정을 해야 합니다. 투입 가능한 시간, 재원, 체력 등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그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한다거나, 필요한 도움을 정의하고 요청하여 아웃소싱을 해야 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이 과정에서 자원 관리와 위임의 능력이 상당히 개발 되는데, 이것은 조직에서 일과 사람을 관리하는 역량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세 번째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유연성과 적응력입니다. 아이를 키우고 집안을 돌보다 보면 예기치 않은 상황들이 발생하거든요. 처음에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도, 결국은 대처를 해야하기 때문에 순발력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상황이 급박하게 변하고 내 예상대로 되지 않아도 결국은 솔루션을 생각해 내야 하는 것이지요.
돌보는 능력도 개발됩니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이 돌봄의 대상에 타인은 물론 본인도 포함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의 생명과 안전이 본인에게 달려있다는 책임감은 잠시도 회피할 수 없는 무게일텐데요. 그 책임감 때문에 너무나 지치지만, 결국 그 책임감 때문에 그 지친 본인의 상태를 개선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는 상황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쉬려면 시간을 어떻게 확보해야 하는지, 누구한테 어떤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 그리고 자기 자신을 어떻게 다독여야 하는지 등을 적극적으로 궁리하면서 더 넓은 의미의 돌봄 능력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